
솔직히 저는 레알 마드리드가 이렇게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학창시절 처음 유럽 축구를 접했을 때,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 명단을 보는 순간 그냥 말문이 막혔거든요. 그런데 그 팀이 2시즌 연속 주요 트로피를 단 하나도 들지 못했습니다. 이게 단순히 선수 탓일까요, 아니면 구단 운영 자체의 문제일까요.
2시즌 연속 무관, 숫자가 말해주는 레알의 위기
일반적으로 레알 마드리드는 위기가 와도 결국엔 트로피를 가져가는 팀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축구팬들 사이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죠. "레알, 바르사, 뮌헨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말입니다. 이른바 레·바·뮌이라 불리는 이 세 팀은 포지션별 전력의 깊이와 브랜드 파워 면에서 세계 최상위권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번 시즌만큼은 이 공식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라리가(스페인 1부 리그), UEFA 챔피언스리그(유럽 최고 클럽 대항전),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 세 대회 모두에서 우승을 놓쳤습니다. 클럽 역사상 이 정도 규모의 무관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더 놀라운 건 이게 2년 연속이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특히 충격을 받은 건 따로 있습니다. 2026 FIFA 월드컵 스페인 대표팀 명단에 레알 마드리드 소속 선수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스페인 대표팀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레알 마드리드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처럼 읽혔습니다.
팀 내부 상황도 복잡했습니다. 스쿼드 밸런스(선수단 구성의 균형)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는데, 여기서 스쿼드 밸런스란 공격·수비·미드필드 라인 전반에 걸쳐 선수들의 전력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지를 의미합니다. 레알은 개인 능력치는 높지만 조직적 연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 문제가 결정적인 경기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번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주요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2시즌 연속 라리가·챔피언스리그·코파 델 레이 무관
- 감독 교체(사비 알론소 경질 → 알바로 아르벨로아 임명)에도 성과 없음
- 스쿼드 내 갈등과 탈의실 분위기 악화
- 스페인 대표팀에 레알 소속 선수 전무(사상 첫 사례)
- 차기 감독 선임을 둘러싼 불확실성 지속
레알 마드리드의 시즌별 트로피 기록은 UEFA 공식 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UEFA).
페레스의 리더십, 과거의 영광이 현재를 가리고 있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2000년 처음 취임한 이후 레알 마드리드를 세계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강력한 축구 클럽으로 키운 인물입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챔피언스리그 우승만 7번이고, 데이비드 베컴,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나자리우 같은 선수들을 연달아 영입하며 이른바 '갈락티코 프로젝트'를 완성했습니다. 갈락티코 프로젝트란 세계 각국의 최고 스타 선수들을 한 팀에 집결시키는 전략으로, 스포츠 성과와 상업적 흥행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식입니다. 그 시절 레알의 프리킥 수비 벽을 보면서 "저게 도대체 얼마짜리 벽이야"라고 혼자 중얼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포지션마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시즌을 보면서 한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무리 좋은 선수들이 모여 있어도 축구는 결국 11명이 하는 스포츠라는 것입니다. 전술적 코히전(tactical cohesion), 즉 선수들이 하나의 유기적인 전술 체계 안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조화로움이 없으면 개별 능력은 의미가 반감됩니다. 이번 시즌 레알이 보여준 모습이 딱 그랬습니다.
페레스 회장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업적을 강하게 옹호하며, 한 시즌의 부진이 수년간의 성과를 지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동시에 자신을 겨냥한 음모가 있다고 비난하면서, 비판자들에게 직접 선거에 나와보라고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흥미롭게도 자신감보다는 수세적인 방어처럼 읽혔습니다.
일반적으로 강한 리더는 위기 상황에서 비판에 반격하기보다 구조적 문제를 인정하고 변화를 제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페레스의 이번 대응은 그 반대에 가까웠습니다. 사비 알론소를 경질하고 알바로 아르벨로아를 임명한 것도, 현재 무리뉴 감독 복귀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모두 장기 플랜보다는 단기 처방에 가까워 보입니다.
레알 마드리드 회장 선거에서 페레스가 자주 무투표 당선되는 이유는 클럽 내부 선거 규정에 있습니다. 후보 등록을 위해 상당한 규모의 재정 보증(financial guarantee)이 필요한데, 여기서 재정 보증이란 클럽 자산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리 담보로 제출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이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후보 자체가 거의 없다 보니, 사실상 경쟁이 차단된 구조입니다. UEFA는 클럽 거버넌스(지배구조)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지만(출처: UEFA 클럽 라이선싱), 레알 마드리드 내부 선거 시스템에 대한 개혁 논의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결국 이번 선거가 진짜 경쟁이 될지, 아니면 또 한 번의 무투표 당선으로 끝날지가 관건입니다. 설령 페레스가 다시 당선되더라도, 팬들이 원하는 건 트로피 수가 아닌 팀이 다시 제대로 작동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다음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행보가 어느 때보다 궁금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스타 감독 한 명을 데려온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클럽 철학을 재정립하고, 스쿼드 구성을 전면 재검토하며, 리더십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다시 "레·바·뮌은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을 당연하게 들을 수 있는 팀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저는 아직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참고: https://news.az/news/why-has-florentino-perez-called-new-presidential-elections-at-real-madr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