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박지성 (챔피언스리그, 월드컵, 플레이스타일)

by dlehgus12 2026. 4. 25.

영원한 캡틴 박지성
박지성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해는 2008년입니다. 아시아 선수가 유럽 정상에 선 그 장면을 TV 앞에서 봤을 때, 저는 솔직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뭔가가 목 안쪽에 걸렸던 기억이 납니다.

 

박지성이 챔피언스리그와 월드컵에서 남긴 발자국

 

박지성의 유럽 여정은 2002 월드컵 직후 히딩크 감독의 손을 잡고 PSV 아인트호벤으로 건너가면서 시작됩니다. 처음엔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고, 인종차별까지 맞닥뜨렸다는 이야기는 당시에도 꽤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다잡은 뒤의 박지성은 달랐습니다. PSV 홈팬들이 자발적으로 응원가를 만들고 "지송빠레"를 외치기 시작했을 때, 제 기억엔 국내 팬들 사이에서도 그 영상이 엄청나게 돌았습니다. 외국 팬들이 한국 선수를 저렇게 사랑한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PSV에서의 활약은 퍼거슨 감독의 눈에 들었고,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으로 이어집니다. 올드 트래포드(Old Trafford)는 단순한 경기장이 아니라 유럽 축구의 상징적인 무대입니다. 그 무대에 아시아 선수가 주전으로 뛴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선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박지성은 그곳에서 프리미어 리그 우승 4회(2007, 2008, 2009, 2011)와 2008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그리고 FIFA 클럽 월드컵까지 들어 올렸습니다.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2006-07 시즌 8강에서 AS 로마를 상대로 넣은 골은 맨유의 준결승 진출을 확정짓는 중요한 득점이었고, 2008년 결승에서는 어시스트까지 기록했습니다. 단순히 뛴 게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마다 흔적을 남겼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월드컵 무대에서도 그랬습니다. 박지성은 2002년, 2006년, 2010년 세 차례 월드컵에 출전했는데, 2002년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서 연장 결승골을 터뜨린 장면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경기에서도 선제골을 넣으며 한국의 16강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한국이 월드컵 사상 최초로 4강에 오른 그 대회에서, 박지성은 단순한 조연이 아니었습니다.

박지성의 챔피언스 리그와 월드컵 출전 이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PSV 아인트호벤 소속으로 2005년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진출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2008년 챔피언스 리그 우승
  • 2002, 2006, 2010년 FIFA 월드컵 3회 연속 출전
  • 2002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전 결승골, 포르투갈전 선제골 기록

FIFA 공식 기록에 따르면 2002 한일 월드컵은 아시아 팀이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오른 대회로, 박지성은 그 역사의 핵심 주역 중 한 명이었습니다(출처: FIFA).

 

박지성 플레이스타일의 진짜 가치와 그 한계

 

퍼거슨 감독이 한 말이 있습니다. "박지성을 제대로 보고 싶으면 공이 아니라 박지성만 90분 내내 쫓아가며 봐라." 제가 들은 이 말은 단순한 칭찬이 아닙니다. 그의 오프 더 볼(off the ball) 움직임, 즉 공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의 움직임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압축한 표현이었습니다. 오프 더 볼이란 볼 소유자 외의 선수들이 공간을 만들고 상대 수비를 흐트러뜨리는 모든 움직임을 뜻하는데, 이 능력이 부족한 선수는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팀 전술에 녹아들기 어렵습니다.

퍼거슨은 나중에 "박지성을 너무 저평가했다"고까지 했습니다. 저는 이 발언이 그냥 립서비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지성의 하이 프레싱(high pressing) 능력, 그러니까 상대 빌드업 단계부터 강하게 압박하는 전술적 역할은 맨유가 유럽 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한 요소였으니까요.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박지성에게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제 경험상 그의 경기를 오래 보다 보면 한 가지가 눈에 걸립니다. 바로 크리에이티브 패싱(creative passing)의 한계입니다. 크리에이티브 패싱이란 좁은 공간에서 상대 수비 라인을 뚫는 수직적이고 창의적인 패스 능력을 말하는데, 이 부분에서 박지성은 같은 시대의 공격형 미드필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팩트가 약했습니다. 또 스트라이커나 세컨드 톱으로 올라갔을 때의 마무리 능력도 아쉬운 장면이 종종 있었습니다.

결국 그의 가치는 포지셔널 플레이(positional play), 즉 팀 전술 구조 안에서 적재적소에 위치하며 공간을 메우고 압박을 주도하는 역할에 집중되었습니다. 포지셔널 플레이란 개인 기술보다 팀 전체의 공간 배분과 압박 구조를 최적화하는 플레이 방식으로, 현대 축구에서 점점 더 중요하게 평가받는 개념입니다. 박지성은 그 개념이 보편화되기도 전에 이미 그렇게 뛰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서울 상암에서 직접 그를 봤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아이콘 매치에 나왔던 그날, 박지성의 무릎은 정상적으로 걷기도 어려울 만큼 손상된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면서 경기장에 나와 뛰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 장면에서 제가 느낀 건 선수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존경이었습니다.

맨유 레전드와 수원삼성 레전드가 붙은 경기에서도 20분가량 뛰며 팬들에게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몸이 그 상태임에도 팬을 찾아온다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닙니다. 프리미어 리그 역사에서도 이 정도의 헌신을 보여준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출처: Premier League).

박지성은 아시아 선수가 유럽 정상급 리그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또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직접 몸으로 증명했습니다. 그 이후 손흥민이 나왔고, 더 많은 한국 선수들이 유럽 무대를 꿈꾸게 됐습니다. 박지성이 없었다면 그 경로가 지금처럼 열려 있었을지, 저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축구의 영원한 캡틴이라는 말이 그냥 감정적 수사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참고: https://fiabravenna.com/park-jisung-champions-league-victory-world-cup-appearances-club-milestones/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