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체스터 시티가 처음부터 세계 최강 클럽이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 프리미어리그를 접했을 때, 맨체스터의 왕은 단연 맨유였고 맨시티는 그 옆에서 빛을 잃은 팀이었습니다. 그 팀이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돈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시티 풋볼 그룹(CFG)이라는, 축구를 시스템으로 설계한 조직입니다.
같은 연고지, 완전히 달라진 판도
제가 처음 맨체스터 더비를 봤을 때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당시엔 솔직히 결과가 어느 정도 정해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맨유가 압도하는 구도였고, 맨시티는 한 수 아래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아부다비의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이 구단주로 오면서 맨시티에는 엄청난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만수르'라는 이름이 돈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 유행어가 될 정도였으니, 그 파급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그 이후 맨체스터 더비는 말 그대로 전쟁이 됐습니다. 매 경기가 명승부였고,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도파민이 폭발하는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돈만으로 이렇게 일관되고 지속적인 강팀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단순히 스타 선수를 사들이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답을 찾다가 시티 풋볼 그룹(CFG)이라는 조직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글로벌 네트워크, 어떻게 설계되어 있나
CFG는 2013년에 공식 설립된 멀티 클럽 오너십(Multi-Club Ownership) 조직입니다. 멀티 클럽 오너십이란 하나의 모기업이 여러 국가의 축구 클럽을 동시에 소유·운영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맨체스터 시티를 정점으로 전 세계 여러 클럽을 하나의 체계 아래 묶어놓은 것입니다.
현재 CFG가 소유하거나 지배적 지분을 보유한 클럽은 13개에 달하며, 파트너십 형태의 클럽까지 포함하면 그 범위는 더욱 넓어집니다. 대륙별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유럽: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 지로나 FC(스페인), 팔레르모 FC(이탈리아), 트루아 AC(프랑스), 롬멜 SK(벨기에)
- 북중미: 뉴욕 시티 FC(미국)
- 남미: 몬테비데오 시티 토르케(우루과이), 에 스포르치 클루비 바이아(브라질)
- 아시아·오세아니아: 뭄바이 시티 FC(인도), 멜버른 시티 FC(호주),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일본, 파트너)
이 구조가 단순한 투자 포트폴리오가 아닌 이유는, 모든 클럽이 동일한 포지셔널 플레이(Positional Play) 철학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포지셔널 플레이란 공간을 구조적으로 활용하고, 공점유율을 높이며, 조직적인 압박과 빠른 전환을 통해 경기를 지배하는 전술 개념입니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맨체스터 시티에서 구현한 그 스타일이 네트워크 전체에 원칙의 형태로 녹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여러 CFG 소속 클럽의 경기를 챙겨봤는데, 세부 전술은 달라도 경기를 풀어가는 기본 색깔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확실히 우연이 아닌, 의도된 결과로 보였습니다.
선수 육성, 이동 경로까지 설계된 시스템
CFG 모델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선수 육성 방식입니다. 단순히 좋은 선수를 비싸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잠재력 있는 어린 선수를 조기에 발굴해 단계별로 성장시키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몬테비데오 시티 토르케에서 발굴한 19세 유망주가 롬멜 SK로 이적해 유럽 축구를 처음 경험한 뒤, 지로나 FC에서 1부 리그 경기력을 쌓고, 최종적으로 맨체스터 시티로 올라오거나 고수익 이적료를 받고 외부 클럽에 매각되는 시나리오가 가능합니다. CFG는 이 전체 여정을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중앙 집중식 스카우팅 허브입니다. 맨체스터에 위치한 이 허브는 전 세계 선수들의 경기력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예측 모델링(Predictive Modeling)을 통해 선수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수치화합니다. 예측 모델링이란 현재의 기록 데이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이 미래 퍼포먼스를 추정하는 방식으로, 단순 인상 평가에 의존하는 전통적 스카우팅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CFG의 스카우팅 기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기술적 기량: 압박 상황에서도 볼을 다루고 좁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가
- 전술 이해도: 포지셔닝, 공간 인식, 팀 구조 이해 능력
- 적응력과 사고방식: 새로운 환경과 리그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가
- 발전 가능성: 현재 실력이 아닌 2~3년 후 성장 가능성
솔직히 이 부분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히 돈으로 완성품 선수를 사들이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훨씬 정교한 육성 철학이 뒤에 있었습니다. 데이터 분석과 비디오 스카우팅을 전통 스카우팅과 결합해 운영한다는 사실은, 이 그룹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설계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출처: The Football Analyst).
자본의 힘인가, 구조의 힘인가
CFG의 성공을 단순히 중동 자본의 결과로만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유럽축구연맹(UEFA)이 파이낸셜 페어플레이(Financial Fair Play) 규정을 도입한 배경에는 CFG처럼 외부 자본이 대규모로 유입된 클럽들이 시장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파이낸셜 페어플레이(FFP)란 클럽이 수입 범위 안에서 지출하도록 규제해 재정적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제도입니다. 실제로 맨체스터 시티는 FFP 위반 혐의로 프리미어리그와 UEFA 양쪽에서 조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출처: UEFA).
제 경험상 이런 논란은 CFG 모델이 단순히 축구를 잘하는 조직이 아니라, 기존 축구 생태계의 규칙 자체를 흔드는 구조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13개 클럽을 하나의 기업 논리로 연결해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은 분명 효율적이지만, 각 클럽이 지닌 지역적 정체성과 팬들의 문화적 유대감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시아 쪽을 보면, CFG는 뭄바이 시티 FC, 멜버른 시티 FC, 요코하마 F. 마리노스 등 여러 클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리그에는 아직 CFG 소속 클럽이 없는데, 솔직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K리그 팀들도 이런 수준의 체계적인 스카우팅 시스템과 선수 육성 인프라를 갖춘다면, 지금보다 훨씬 경쟁력 있는 리그로 성장해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나 FIFA 클럽 월드컵 같은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CFG가 단순한 재벌의 축구 장난감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찬사만 보내기도 어렵습니다. 축구가 돈과 데이터로 설계되는 시대에, 우리가 축구에서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CFG는 현대 축구의 가장 앞선 모델이자, 동시에 현대 축구가 직면한 자본 집중의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사례입니다. 이 구조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 그리고 다른 리그와 클럽들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앞으로 축구계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the-footballanalyst.com/city-football-group-behind-footballs-largest-global-network/
https://www.uefa.com/insideuefa/protecting-the-game/club-licensing-and-financial-fair-p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