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프리미어리그가 이렇게 잔인한 곳인지 몰랐습니다.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서 활약하던 시절, 제 눈에 보이는 건 늘 우승 트로피를 드는 팀들뿐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손흥민 선수가 뛰었던 토트넘마저 강등 위기를 겪고, 황희찬 선수의 울버햄튼은 2부 리그로 내려가는 상황입니다. 2시즌 연속으로 승격팀 세 팀이 모두 강등된 지금, 승격 자체보다 살아남는 법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2시즌 연속 전원 강등, 그냥 운이 나빴던 걸까
2023-24 시즌에 루턴 타운, 번리, 셰필드 유나이티드가 모두 한 시즌 만에 강등되었을 때만 해도 저는 그냥 그런 해도 있다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2024-25 시즌에 레스터 시티, 입스위치 타운, 사우샘프턴까지 똑같이 전원 강등되자 뭔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사우샘프턴은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빨리 강등이 확정된 팀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웠습니다. 시즌 종료까지 7경기나 남은 시점에서 이미 2부 행이 결정됐으니까요. 레스터는 고작 25점을 획득했는데, 이는 프리미어리그 38경기 시즌에서 18위를 기록한 팀 중 역대 최저 승점입니다.
여기서 PSR(수익 및 지속가능성 규정)이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PSR이란 구단이 지속 가능한 재정 범위 안에서 운영되도록 강제하는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규정으로, 이를 위반하면 승점이 삭감되는 징계를 받게 됩니다. 실제로 2023-24 시즌 노팅엄 포레스트는 PSR 위반으로 4점이 깎여 32점으로 17위를 간신히 유지했습니다. 재정 관리가 성적과 직결되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이게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2022-23 시즌에 풀럼은 승격 첫 해에 10위로 시즌을 마쳤고, 브렌트포드는 창단 첫 프리미어리그 시즌에 13위를 기록했습니다. 데이터상으로도 20개 팀 체제의 프리미어리그 30시즌 동안 승격팀의 47.2%, 즉 89개 팀 중 42개 팀이 곧바로 강등되었으니 절반 이상은 살아남았다는 뜻입니다(출처: The Analyst). 그러니 연속 전원 강등은 통계적 이상 현상에 가깝지만,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신호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데이터가 알려주는 잔류의 조건
제 경험상 축구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결국 숫자에서 나오더라고요. 잔류를 위한 조건을 데이터로 정리하면 꽤 명확한 패턴이 보입니다.
우선 초반 5경기 승점이 결정적입니다. 프리미어리그 33시즌 동안 개막 후 5경기에서 8점 이상을 획득한 승격팀 중 곧바로 강등된 팀은 단 한 팀도 없었습니다. 반면 지난 두 시즌 강등된 6팀은 모두 첫 5경기에서 3점조차 넘기지 못했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이렇게 수치로 증명될 줄은 몰랐습니다.
다음은 이른바 '마법의 40점' 기준입니다. 잔류를 위해 40점이 필요하다는 말은 클리셰처럼 쓰이는데, 실제로 20개 팀 체제 이후 17위 팀들의 평균 승점은 37.9점입니다. 여기서 골득실(GD, Goal Difference)도 중요한데, 골득실이란 득점에서 실점을 뺀 수치로 팀의 전반적인 공수 균형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강등된 팀들의 평균 골득실은 -25.4였으며, 이 수치를 -20 안팎으로 관리하는 팀들은 대체로 살아남았습니다.
2025-26 시즌 승격팀인 번리, 리즈 유나이티드, 선덜랜드의 생존 가능성을 판단할 때 주목할 핵심 지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 번리: 챔피언십 최소 실점(16골)과 원정 49점 획득으로 수비와 원정 경기력이 탄탄함
- 리즈 유나이티드: 홈 23경기 단 1패, 챔피언십 100점 획득이라는 압도적 전력
- 선덜랜드: 홈 구장인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43점을 쌓은 안정적인 홈 경기력
번리의 경우 지난 시즌 챔피언십에서 원정 23경기 동안 단 8골만 실점했습니다. 이는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수비 조직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엘 피로에는 리즈에서 19골을 넣었지만 프리미어리그 경험이 없다는 점은 변수입니다. 프리미어리그의 압박 강도와 경기 템포는 챔피언십과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적응 기간이 얼마나 짧냐가 리즈의 생존을 가를 수도 있습니다.
잔류를 넘어서, 지속 가능한 팀이 되려면
솔직히 이건 제가 예상 밖이라고 느꼈던 부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승격팀의 목표는 그냥 잔류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잔류만을 목표로 삼으면 팀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팬들의 기대감도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리즈 유나이티드가 2003년부터 17년간 2부 리그를 떠돌았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던 팀이 한 번 강등된 이후 얼마나 긴 암흑기를 보내야 했는지를 제가 직접 지켜봤기 때문에, 강등이 단순한 시즌 실패가 아니라 클럽 전체의 방향을 바꿔버린다는 걸 압니다.
이번 시즌 선덜랜드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건 단순히 승격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4시즌 동안 리그 원에서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올라온 팀이라는 점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리그 원이란 잉글랜드 3부 리그를 뜻하며, 선덜랜드는 그곳에서 선수 발굴과 전술 정비를 거쳐 승격 후에도 중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백승호 선수가 뛰고 있는 버밍엄 시티도 3부 리그까지 내려갔다가 체계적인 재건을 통해 2부 리그 중위권까지 올라온 사례인데, 이런 팀들이 주는 교훈은 결국 장기적 로드맵이 있는 팀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재정 관리와 스쿼드 뎁스(Squad Depth) 확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스쿼드 뎁스란 주전 외에도 비슷한 수준의 선수들이 여러 포지션에 준비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며, 부상이나 출전 정지 상황에서 팀 전력이 급격히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입니다. 프리미어리그는 일정이 밀집되어 있고 강도도 높기 때문에, 주전 11명만 믿다가 한 명이 빠지는 순간 연패의 늪에 빠지는 팀을 여러 번 봤습니다(출처: Premier League 공식 사이트).
결국 승격팀이 1부 리그에서 살아남으려면 초반 승점 확보, 안정적인 홈 경기력, 팀 내 득점원 확보라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추면서 동시에 장기적인 클럽 비전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번리, 리즈, 선덜랜드 세 팀 모두 나름의 강점을 가지고 올라왔지만, 어떤 팀이 먼저 프리미어리그의 속도에 적응하느냐가 이번 시즌의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개막 5경기, 정말 눈 여겨볼 만합니다.
참고: https://theanalyst.com/articles/premier-league-survival-guide-how-can-promoted-teams-stay-up
https://www.premierleagu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