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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공항 입국 장면을 보기 전까지, 설마 저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예선 탈락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귀국 이후 40초 만에 공항을 빠져나간 홍명보 감독과 선수단이 빠진 뒤에야 몰래 나타난 정몽규 회장의 모습은 경기 결과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이번 2026 북중미 월드컵이 남긴 진짜 문제는 성적이 아니라, 그 이후의 대응이었습니다.


40초 퇴장, 공항에서 본 책임 회피의 민낯
새벽 4시, 인천공항에는 붉은 악마를 포함한 수백 명의 팬과 취재진이 몰렸습니다. 저도 영상으로 현장을 지켜봤는데, 선수단 도착을 알리는 문이 열리자마자 홍명보 감독이 조현우 선수를 앞세우고 따라 들어오는 장면을 보는 순간 뭔가 묘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홍명보 감독이 공항을 빠져나가는 데 걸린 시간은 40초였습니다. 인터뷰는커녕 카메라를 향해 고개 한 번 숙이는 모습도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영상을 반복해서 확인해 봤는데, 그 표정이나 걸음걸이에서는 예선 탈락 감독이라는 무게감을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16강 이상을 달성한 감독처럼 당당한 모습이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AC(Accountability Crisis), 즉 책임 회피 위기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됩니다. AC란 조직 또는 개인이 실패 이후 책임을 인정하고 설명하는 대신 노출 자체를 회피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스포츠 조직론에서 이 상태가 장기화되면 팬 이탈과 조직 신뢰도 붕괴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반복적으로 나왔습니다. 정몽규 회장은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선수단이 모두 빠져나가고 팬들이 흩어지기 시작할 무렵, 경호 인력에 둘러싸인 채 뒤늦게 등장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타이밍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시선을 분산시킨 뒤 나오는 전형적인 미디어 노출 최소화 전략입니다. 팬들 앞에서 감독을 방패로 쓰고, 회장은 감독을 방패로 쓰는 구조가 공항에서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이번 귀국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입국 후 공식 인터뷰 및 입장 발표 없음 - 출정식과 해단식 모두 생략 (2002년 이후 최초) - 사퇴 기자회견에서 질의응답 없이 일방 발표만 진행 - 월드컵 결산 간담회 미개최, 문자 한 통으로 대체 - 정몽규 회장의 지연 퇴장으로 노출 최소화 시도
해단식도 결산도 없는 월드컵, 시스템이 문제였다
이번 월드컵에서 출정식과 해단식이 모두 없었다는 사실, 저는 처음에 반신반의했습니다. 하지만 확인해보니 사실이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해단식(解團式)이란 대회를 마친 선수단이 공식적으로 해산하기 전 진행하는 마무리 행사를 의미합니다.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대표팀 운영 전반에 대한 설명 책임을 이행하고 팬들과 소통하는 공식 창구입니다. 이것이 없다는 것은 팬들이 이번 월드컵에 대한 공식 설명을 끝내 듣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홍명보 감독이 현지에서 진행한 사퇴 기자회견에서 나온 말은 "남아공화국전 왜 그렇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는 수준이었습니다. 역대급 선수단과 역대급 조 편성을 갖추고도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 이유가 공식적으로는 '미스터리'로 남은 셈입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가장 화가 났습니다. 성적이 나쁜 것보다, 왜 그런 성적이 나왔는지조차 설명하지 않는 태도가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행정학에서는 이를 투명성 결여(Lack of Transparency)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조직이 의사결정 과정과 결과에 대해 이해관계자에게 공개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며, 장기적으로는 팬 이탈과 스폰서 신뢰 하락으로 직결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FIFA 거버넌스 지침에도 회원 협회의 대국민 소통 의무가 명시되어 있습니다([출처: FIFA](https://www.fifa.com/about-fifa/governance)). 월드컵 성적 면에서도 제가 경험상 이번처럼 답답했던 대회는 없었습니다. 역대 최고 수준의 선수 구성이라고 평가받던 팀이 상대 팀 감독에게 "한국은 딱 예상한 대로 나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전술적 예측 가능성(Tactical Predictability)이 너무 높았다는 뜻인데, 이는 상대 팀이 한국 대표팀의 전술 패턴을 사전에 완벽히 분석하고 대응 전략을 짰다는 의미입니다. 감독 본인이 "전술은 바꾸지 않겠다"라고 공언한 결과가 공항 40초 퇴장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손흥민 편지가 보여준 것, 그리고 한국 축구의 다음 선택
공항 입국 소동과 거의 같은 시각, 손흥민 선수가 개인 SNS에 장문의 편지를 올렸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팬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고, 동료 선수들에 대한 격려와 응원을 부탁하고, 자신은 "팬들이 필요로 할 때까지 죽기 살기로 달리겠다"고 했습니다. 감독이 해야 할 말을, 협회장이 해야 할 역할을, 주장이 혼자 다 했습니다. 제 경험상 위기 상황에서 조직의 리더가 침묵할 때 현장의 선수나 직원이 그 공백을 메우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이번이 딱 그 구도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팬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붉은 악마 측에서 공항에서의 물리적 항의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고, 실제로 팬들은 그 요청을 지켰습니다. 계란이나 물건을 던지는 대신 플래카드와 구호로 비판을 표현했습니다. 팬 문화의 성숙도(Fan Culture Maturity)가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는 스포츠 팬덤이 감정적 발산보다 조직적이고 표현적인 방식으로 의견을 전달하는 수준으로 발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반면 일본 대표팀은 이번 월드컵에서 브라질에 패배한 뒤 모리야스 감독이 팬들 앞에서 90도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한국 팬들이 이 장면과 홍명보 감독의 40초 퇴장을 나란히 비교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국제 스포츠 거버넌스 전문가들도 패배 이후 지도자의 공개적 책임 표명이 팬 신뢰 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지적합니다([출처: 대한체육회](https://www.sports.or.kr)). 현재 한국 축구는 협회장도 없고 대표팀 감독도 없는 상태입니다. 9월 A매치와 내년 아시안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땜빵식 선임으로 또 같은 패턴을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이번 기회를 시스템 전체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을 것인지, 그 선택이 한국 축구의 다음 10년을 결정할 것입니다. 결국 이번 사태가 남긴 가장 큰 숙제는 성적이 아니라 시스템입니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이 있어도 협회와 감독 선임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데스로드를 걷더라도 제대로 된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변명이 아니라 변화이고, 그 변화는 공항에서의 40초가 아니라 협회 구조 전반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IevpJoICoj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