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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2년 전 청문회 자리에서 "제 책임이니 회장님께 묻지 말라"던 사람이, 이제 와서 법원에 메모를 제출하며 "저는 아무것도 결정한 게 없다"고 돌아서리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이제 법정으로 넘어갔고, 축구팬 입장에서 지켜보는 이 장면은 참담하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이 없습니다.

메모 공개, 억울함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이임생 전 기술총괄이사가 법원에 제출한 서면에는 2024년 7월 5일 밤 11시, 분당의 한 빵집에서 홍명보 감독을 만났다는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이임생 전 이사가 직접 손으로 메모한 것으로, 홍명보 감독의 전술 스타일과 경기 운영 방식에 대한 짤막한 평가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메모에는 '미들 블록(Mid-block)'이라는 전술 개념도 등장합니다. 미들 블록이란 수비 라인을 중앙에 집결시켜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는 전술 방식으로, 무조건적인 전방 압박과 구분되는 개념입니다. 이 외에도 4-2-3-1, 4-3-3 등의 포메이션 변형 가능성, 경기 템포와 밸런스 조율에 관한 내용이 단어 중심으로 짤막하게 정리돼 있었습니다.
이임생 전 이사 측이 이 메모를 공개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당초 문체부와 대한축구협회 간 행정소송에서 1심은 축구협회 패소로 끝났고, 항소심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이임생 전 이사가 소송 참가를 선언하면서 자신이 '독박'을 쓰는 구도에 맞서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쉽게 말해, "나는 꼼꼼히 확인하고 보고했을 뿐, 결정은 위에서 한 것"이라는 주장의 방어 자료로 제출된 겁니다.
저도 처음엔 이 메모가 꽤 의미 있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자필 메모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보고하려고 기록을 남겼다"는 정황은 될 수 있어도, "내가 결정하지 않았다"는 직접 증거가 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보고를 위해 메모를 남긴 거라면 최소한 정리된 보고서 형태로 만들어 올렸어야 논리가 맞지 않을까요.
- 메모에 담긴 내용: 미들 블록, 포메이션 변형(4-2-3-1 / 4-3-3), 경기 템포·밸런스 조율 방식
- 이임생 전 이사 주장: 한국어로 직접 대화 가능해 외국인 감독과 달리 번역 없이 혼자 메모했다는 해명
- 반론: 외국인 후보(포항·박근어)와의 면담에는 변호사·실무 직원 동행, 계약 관련 문서도 남겼지만 홍명보와는 단 둘이 비밀리에 만남
진실 공방, 11시 빵집에서 벌어진 일
메모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그다음 내용이었습니다. 이임생 전 이사가 법원에 제출한 서면에 따르면, 홍명보 감독은 빵집 면담 다음 날 "소속 팀 현대(울산 HD)에서 날 풀어 준다면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하겠다"라고 연락을 해왔다고 합니다. 이임생 전 이사는 이를 정몽규 회장에게 그대로 보고했고, 정몽규 회장은 "그러면 홍명보 감독으로 해라, 자세한 건 김정배 부회장과 상의해라"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대목에서 제가 가장 의구심을 가졌던 부분은 홍명보 감독의 태도입니다. 당시 홍명보 감독은 공개 석상에서 "울산을 떠나지 않겠다"라고 강하게 말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임생 기술이사급 인사가 밤에 찾아와 이야기를 나눴더니, 다음 날 곧바로 "울산이 날 풀어주면 간다"라고 조건을 제시했다는 건 — 상식적으로 어떤 '사전 교감' 없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드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위증(僞證)이라는 개념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위증이란 선서 후 법적 절차에서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는 행위로, 국회 청문회에서도 위증죄가 적용됩니다. 이임생 전 이사는 2년 전 청문회에서 "제가 다 한 겁니다, 회장님께는 책임을 묻지 마세요"라고 했고, 정몽규 전 회장은 "홍명보 선임은 이임생이 결정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두 사람의 말이 지금 완전히 갈리고 있으니, 최소한 한 명은 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한 셈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식의 공방은, 책임질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들이 궁지에 몰릴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당장 눈앞의 위기를 넘기려고 한쪽이 모든 걸 짊어진다고 했다가, 이후 법적 처벌이 가시화되면 그 약속을 뒤집는 구조 말입니다.
책임 전가, 지도부가 보여준 민낯
저는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가장 참담했던 순간이 따로 있습니다. 이임생 전 이사, 정몽규 전 회장, 홍명보 감독. 이 세 사람은 한국 축구 대표팀 체계의 실질적인 지도부, 즉 집행부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법적 책임이 구체화되는 시점에서 보여주는 행동이 "내가 한 게 아니라 저 사람이 한 것"이라는 책임 전가라는 점입니다.
행정소송(行政訴訟)이란 정부 기관이나 공공단체의 행정 행위에 불복해 법원에 그 취소나 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송 절차입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축구협회 사이의 소송이 바로 이 행정소송이며, 1심에서 축구협회가 패소한 후 항소심이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임생 전 이사가 소송 참가를 선언하며 "나는 독박을 쓸 수 없다"라고 뛰어든 것입니다.
더 심각한 건 압수수색이 실제로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몽규 전 회장과 이임생 전 기술이사는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탈락 직후 휴대전화를 교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증거인멸(證據湮滅) 정황 논란까지 불거졌습니다. 증거인멸이란 수사나 재판에서 불리한 증거를 숨기거나 없애는 행위로, 형사처벌 대상이 됩니다. 두 사람 모두 그 시점에 핸드폰을 바꿨다는 건 공교롭다는 표현 이상의 무언가를 시사합니다.
제가 직접 그 청문회 장면을 보면서 느꼈던 건, 이 사람들은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겠지"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국민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뻔뻔하게 모순된 발언을 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이건 아이보다도 못한 어른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면 얼굴이 빨개집니다.
제도적 개선, 이번이 마지막 기회여야 한다
"어차피 축구협회는 바뀌지 않는다"는 체념 섞인 시선 말입니다. 저도 솔직히 그 생각에 완전히 반박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압수수색이 실제로 이뤄졌고, 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며, 메모와 서면이라는 구체적인 물증이 공개됐기 때문입니다.
대한축구협회(KFA)는 FIFA(국제축구연맹) 회원 단체로서 대한민국 축구를 총괄하는 법인입니다. FIFA 규정에 따르면 회원국 축구협회는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자격 정지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출처: FIFA 공식 규정). 이번 사태처럼 문체부가 직접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축구협회 내부 인사 선임에 개입하는 구조 자체가 FIFA 규정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반면 국내 체육 행정의 관점에서는,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대표팀 운영에 대한 최소한의 투명성 확보는 정당한 요구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제로 문체부는 대한축구협회의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사를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지금의 법적 분쟁이 시작됐습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공식 사이트).
제 경험상 이런 구조적 문제는 개인 한 명을 처벌한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감독 선임 과정을 외부에서 검증할 수 있는 투명한 시스템,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장치, 그리고 청문회 위증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이 뒤따르지 않으면 이 일은 수년 후 다른 이름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사건의 교훈은 "나쁜 사람이 있었다"가 아니라 "나쁜 사람이 활개 칠 수 있었던 구조가 있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임생 전 이사가 공개한 메모가 법적으로 효력이 있나요?
A. 자필 메모는 정황 증거로 활용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결정 권한이 없었다"는 직접 증거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메모가 보고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실제 보고서나 상부 지시 문서 같은 추가 증거가 있어야 주장이 보완될 수 있습니다.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Q. 청문회에서 위증을 하면 실제로 처벌받을 수 있나요?
A. 국회에서의 위증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 대상이 됩니다.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해당하는 중한 범죄입니다. 다만 실제로 기소까지 이어지려면 위증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충분해야 하며, 이임생·정몽규 두 사람의 진술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금 상황에서 수사 결과가 핵심이 될 것입니다.
Q. 홍명보 감독도 이번 사태에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나요?
A. 현재 공개된 내용만으로는 홍명보 감독에게 직접적인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임생 전 이사의 서면 주장대로라면, 울산HD와의 계약 관계 및 대표팀 수락 조건 협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향후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확인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절차적 투명성 차원에서 감독 본인도 공식 입장을 밝혀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문체부와 축구협회의 행정소송, 결국 어떻게 될까요?
A. 1심에서 축구협회가 패소한 이후 항소심이 진행 중입니다. 이임생 전 이사가 소송에 참가하면서 사실관계가 더 복잡해졌고, 압수수색으로 새로운 증거가 확보될 경우 판세가 크게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FIFA 독립성 규정 문제도 얽혀 있어 단순히 국내 행정법 논리만으로 결론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결론
제가 이 사건을 2년 내내 지켜보면서 든 생각은 하나입니다. 처음부터 누군가 솔직하게 나섰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거라는 것입니다. 청문회에서, 기자회견에서, 혹은 그것도 어려웠다면 내부에서라도 진실이 정리됐다면 지금 이 진흙탕 싸움은 없었겠지요. 그러나 이제 와서 "저는 억울합니다"를 외치는 이 모습이, 한국 축구 행정이 얼마나 오랫동안 책임 없는 사람들에게 맡겨져 있었는지를 방증합니다.
정리하면, 이번 사태는 개인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선임 절차의 투명성 제도화, 청문회 위증에 대한 실질적 처벌, 그리고 협회 내부 감사 시스템의 독립성 확보가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법원과 수사 당국의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한국 축구 행정의 신뢰를 되찾는 일은 그다음부터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