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이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할 거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입을 모읍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2018년, 2022년 연속으로 16강 승부차기에서 무너진 팀이 정말 우승 후보가 맞는 걸까요? 직접 경기를 챙겨보면서 느낀 건, 스페인은 늘 '잘 하는 팀'이었지만 '이기는 팀'은 또 다른 문제였다는 점입니다.
2002년 기억과 달라진 스페인의 전술적 진화
저는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대한민국과 스페인의 그 승부차기를, 온 가족이 숨죽이며 지켜보던 그 거실 풍경이 여전히 선명합니다. 그때 스페인은 분명 강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함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스페인 대표팀은 전술적으로 완전히 다른 팀이 되었습니다. 제가 경기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변화는 점유율(Possession) 축구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점유율이란 한 팀이 경기 시간 동안 공을 소유한 비율을 의미하는데, 과거 스페인의 티키타카는 패스를 돌리며 상대의 체력을 소진시키는 방식이었다면, 현재 루이스 데 라 푸엔테 감독 체제의 스페인은 점유율을 유지하면서도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직접성을 함께 갖추고 있습니다.
예선 기간 스페인의 점유율은 70.4%로 유럽 상위권이었고, 90분당 xG(기대 득점)는 2.97에 달했습니다. 여기서 xG란 슈팅 상황의 질을 수치화한 지표로, 단순히 슈팅 횟수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위치에서 위협적인 시도를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수치가 높다는 것은 단순히 공을 많이 돌린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골 냄새가 나는 공격을 만들어냈다는 뜻입니다.
또한 스페인이 유럽 5대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 수가 334명에 달한다는 사실도 인상적입니다(출처: FIFA). 2위인 프랑스(262명)와 비교해도 70명 이상 많습니다. 이 깊이가 바로 스쿼드의 다양성과 경쟁력으로 이어집니다. 예전부터 제가 스페인 축구를 보면서 감탄했던 건 미드필더들의 볼 간수 능력과 탈압박 능력이었는데, 로드리, 페드리, 파비안 루이스, 마르틴 주비멘디로 이어지는 현재의 미드필드 라인은 그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훨씬 역동적입니다.
라민 야말, 18세가 만들어내는 예술
제가 한번은 봉준호 감독이 라민 야말의 플레이를 보면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는 인터뷰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거장 영화감독이 축구 선수에게 그런 표현을 쓴다는 게 처음엔 과장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직접 유로 2024 준결승 프랑스전에서 야말이 25야드 거리에서 감아 넣은 그 골을 보고 나서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그 나이가 믿기지 않는 플레이였습니다.
라민 야말은 현재 시장가치 2억 유로로 스페인 대표팀 최고 자산입니다. 유로 2024에서 7경기 4도움을 기록했고, 월드컵 예선에서는 단 2경기 출전으로 3도움을 쌓았습니다. 드리블 돌파와 좁은 공간에서의 방향 전환, 그리고 킬 패스까지, 야말이 오른쪽 측면에서 만들어내는 비대칭 공격은 대부분의 수비진이 쉽게 대처하지 못합니다.
반대편 왼쪽을 맡는 니코 윌리엄스(21)와의 조합은 스페인 공격의 핵심입니다. 두 윙어가 서로 다른 스타일로 측면을 장악하고, 중앙의 페드리가 템포를 조절하며 로드리가 수비와 공격 사이의 균형을 잡는 구조는 상대 팀 입장에서 대응하기 매우 까다롭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걱정거리였습니다. 야말이 운동성 치골통, 즉 스포츠 탈장이라고도 불리는 사타구니 부상을 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상은 방향 전환과 회전 동작 시 통증을 유발하는데, 야말의 핵심 기술이 바로 그 동작들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됩니다. 월드컵처럼 단기 토너먼트에서는 회복 시간이 짧기 때문에, 부상이 악화될 경우 스페인 공격 전체의 무게중심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스페인이 2026년 월드컵에서 극복해야 할 핵심 변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라민 야말의 사타구니 부상 재발 가능성
- 로드리의 햄스트링 부상 후 내구성 검증
- 검증된 엘리트 스트라이커 부재로 인한 공격 마무리 불안
- 유로 우승 직후 월드컵 연속 우승이라는 역사적 징크스
- 데 라 푸엔테 감독의 월드컵 토너먼트 경험 부족
진짜 우승 후보인가, 아니면 또 다른 기대인가
제 경험상 이런 종류의 대회에서 가장 무서운 변수는 언제나 부상입니다. 스페인은 2025년 11월 터키와의 예선 마지막 경기에 라민 야말, 니코 윌리엄스, 로드리, 페드리, 가비 등 핵심 선수 5명이 동시에 결장했고, 결국 2-2 무승부에 그쳤습니다. 이 결과 하나가 스페인의 취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봅니다.
또 하나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번 스페인 대표팀 명단을 처음 봤을 때 레알 마드리드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습니다. 라이벌인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주요 포지션을 채우고 있는 구성은 흥미로운 동시에 낯선 느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팀 조직력 측면에서는 일관된 전술 철학이 잘 녹아들어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옵타의 슈퍼컴퓨터가 1만 건의 시뮬레이션에서 스페인의 우승 확률을 17%로 가장 높게 계산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출처: Opta Sports). 이는 단순한 기대감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의 평가라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릅니다.
역사적으로 유로 대회 우승 이후 같은 사이클에서 월드컵까지 우승한 유럽 팀은 2000년 프랑스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프랑스에는 지단, 앙리, 트레제게가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현재 세대가 그에 버금가는지는 결국 북미 땅에서 직접 증명해야 합니다.
스페인이 H조에서 우루과이, 사우디아라비아, 카보베르데와 묶인 건 분명 유리한 출발선입니다. 문제는 그 이후, 8강과 준결승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프랑스 같은 팀과 맞붙는 순간입니다. 그때 야말이 온전히 뛸 수 있는지, 로드리가 90분을 소화할 수 있는지, 이 두 가지가 스페인의 우승 가능성을 결정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026 월드컵은 48개국이 참가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대회입니다. 변수가 그만큼 더 많아졌습니다. 스페인이 전문가들의 예상처럼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장면을 보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월드컵에서 '당연한 우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야말을 앞세운 이 스페인이 그 징크스를 깨줄지, 이번 여름이 진짜 기대됩니다.
참고: https://www.fifaworldcupnews.com/spain-world-cup-26-analysis-can-spain-w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