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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팀이 약팀한테 진다는 게 정말 드문 일일까요? 20년 넘게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을 챙겨봤습니다만, 올 시즌만큼 빅클럽들이 일제히 고전하는 장면은 솔직히 처음 봤습니다. 맨유는 승격팀 헐시티에 0대 2로 무너졌고, 토트넘은 브랜트포드에 0대 3으로 완패했습니다. 아스날만 혼자 예상대로 출발했을 뿐, 나머지 상위권 팀들은 어딘가 한 군데씩 삐걱거렸습니다.

빅클럽들은 왜 개막전부터 이렇게 무너진 걸까요
제가 이번 개막전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건 선수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였습니다. 물론 맨유의 경우 카세미루 공백이 눈에 띄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월드컵 여파(World Cup Hangover)였다고 봅니다. 여기서 월드컵 여파란, 국가대표팀 일정으로 인해 소속 클럽의 프리시즌(pre-season) — 즉 정규 시즌 개막 전 체력·전술 훈련 기간 — 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채 실전에 투입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토트넘의 파네케와 세네시가 대표적인 사례였고, 두 선수가 수비 조직에 합류하자마자 발을 맞추지 못하면서 브랜트포드전에서 수비 라인이 통째로 흔들렸습니다.
반면 아스날은 선수단과 감독진의 변동이 거의 없었습니다. 로스터의 연속성(squad continuity)이 유지된 팀은 체력 훈련만 마치면 전술적 호흡이 바로 살아납니다. 이것이 아스날이 혼자 안정적인 출발을 할 수 있었던 핵심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변화가 클수록 합류 시점이 늦어지고, 늦어질수록 팀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입니다.
맨유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이번 경기에서 오픈 플레이 크로스가 무려 34회였습니다. 2018년 이후 단일 경기 최다 기록이라고 하더군요. 평균이 14~15회 수준인 걸 감안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전문적으로는 이를 '크로스 의존형 공격 패턴'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쉽게 말해 측면 공격과 개인 돌파가 막히자 별다른 대안 없이 무작정 크로스만 올린 셈입니다. 캐릭 감독의 전술이 수비 블록(defensive block) — 상대팀이 낮게 내려앉아 수비 진영을 촘촘히 구축하는 전략 —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지 다시 한번 확인한 경기였습니다.
헐시티가 5-4-1 수비 블록으로 중앙을 봉쇄했고, 맨유에는 이를 뚫을 전문 윙이 없었습니다. 제가 경기를 보면서 '이건 캐릭 감독 잘못이라기보다 보드진 문제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이유입니다. 챔피언스리그까지 병행하는 시즌임에도 영입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고, 재정적 지속 가능성 규정(PSR, Profitability and Sustainability Rules) — 쉽게 말해 클럽이 쓸 수 있는 돈의 상한선을 규제하는 프리미어리그의 재무 건전화 제도 — 때문에 선수를 내보내야 돈을 쓸 수 있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 맨유: 카세미루 공백 + PSR 제약으로 영입 지연, 수비 라인 불안정, 크로스 34회(2018년 이후 최다)
- 토트넘: 월드컵 여파로 수비 조직 미완성, 0대 3 완패. 득점 자원 영입도 미완료 상태로 개막
- 아스톤빌라: 린델뢰프 자책골 + 줄한고스 조기 퇴장. 여름에 핵심 선수 다수 이탈, 브라이턴에 0대 4
- 아스날: 로스터 변동 최소화로 전술 연속성 유지, 유일하게 안정적 출발
이 혼란이 시즌 전체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까요
개막전 결과 하나로 시즌 전체를 예단하는 건 위험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에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단순한 '초반 진통'이 아니라, 각 팀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개막전이라는 날 선 무대에서 그대로 드러난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맨시티를 예로 들면, 로드리와 레인더러를 잃은 중원의 공백은 한 시즌 전체를 관통할 과제입니다. 이번 본머스전에서 오랄리가 공격형 미드필더(Attacking Midfielder, AM) — 공격과 수비 사이 중원에서 창의적인 패스와 찬스 메이킹을 담당하는 포지션 — 로 선발에 나서고, 게가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메운 것은 사실상 '궁여지책'에 가까웠습니다. 역전승을 거뒀다는 결과보다 내용이 더 걱정됐습니다. 홀란드가 개막전 무득점으로 끝난 것도 단순히 컨디션 문제라기보다는, 그에게 질 좋은 기회를 만들어줄 중원이 무너진 탓이 크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리버풀은 살라가 떠난 오른쪽 측면이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뉴캐슬전에서 은구모아가 왼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기용됐고, 프림퐁이 같은 쪽에서 최악의 경기를 펼치면서 오른쪽 라인이 사실상 붕괴됐습니다. 이라올라 감독이 중소 클럽을 빅클럽으로 이끌어온 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만, 실제로 이런 감독이 빅클럽의 압박 속에서 자기 색깔을 유지하는 케이스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시간이 필요한 감독인데, 리버풀이 그 시간을 줄 수 있는 클럽인지는 솔직히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반면 브라이턴이 보여준 모습은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이었습니다. 카이세도 이후 수차례 핵심 선수와 감독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팀은 매 시즌 같은 스타일로 등장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게임 모델(Game Model) — 클럽이 어떤 선수를 영입하고 어떤 감독을 선임해도 일관되게 적용되는 플레이 스타일과 전술 철학 —입니다. 브라이턴이 스카우팅 시스템과 게임 모델을 클럽 전체에 내재화한 결과, 개인이 아닌 시스템이 움직이는 팀이 된 것입니다. 레드불 그룹의 RB 라이프치히와 FC 잘츠부르크가 동일한 전술 시스템을 공유하며 선수를 교차 활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출처: 프리미어리그 공식).
토트넘의 경우, 마르무시와 사비뉴 영입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만, 저는 솔직히 회의적입니다. 토트넘이 안고 있는 건 득점 자원의 부재만이 아닙니다. 'Same Old Spurs'라는 표현 — 항상 똑같은 패턴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흔들린다는 뜻으로, 영국 미디어가 수년째 반복해서 쓰는 문구 — 이 이번 개막전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손흥민과 케인이 있을 때 가려졌던 팀의 멘탈리티 문제가, 두 선수가 떠나자 그대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입니다. 자신감이 꺾인 팀에 자신감이 없는 선수를 데려오는 건, 제 경험상 해결책이 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BBC Sport는 이번 패배 후 데제르비 감독도 "돈만으로는 토트넘의 패배 의식을 고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출처: BBC Sport).
자주 묻는 질문
Q. 맨유가 헐시티한테 진 게 그렇게 이례적인 건가요?
A. 맨유는 프리미어리그에서 헐시티에게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프리미어리그 승격팀을 상대로 13경기 연속 무패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 기록이 이번에 끊겼습니다. 헐시티는 플레이오프 끝에 겨우 승격한 팀이었고 이적 시장 지출도 적은 편이었다는 점까지 더하면, 이번 패배가 얼마나 이례적인지 감이 오시지 않으십니까?
Q. 토트넘은 마르무시, 사비뉴 영입하면 나아질까요?
A.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봅니다. 두 선수 모두 현재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이고, 자신감이 꺾인 팀에 비슷한 상황의 선수를 더해도 팀 분위기를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팀의 멘탈리티 문제는 결국 선수 한두 명의 영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저의 솔직한 시각입니다.
Q. 월드컵 여파가 개막전에 이렇게까지 영향을 미치나요?
A.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월드컵 참가 선수들은 클럽 프리시즌에 늦게 합류할 수밖에 없고, 새로 영입된 선수와의 호흡을 맞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특히 수비 라인처럼 조직력이 중요한 포지션에서 이 문제가 두드러지는데, 토트넘과 아스톤빌라가 대표적인 피해 사례였습니다.
Q. 브라이턴은 왜 매시즌 선수와 감독이 빠져도 잘하나요?
A. 클럽 전체에 동일한 게임 모델이 내재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감독이 와도, 어떤 선수가 들어와도 같은 전술 시스템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입니다. 스카우팅 시스템도 이 게임 모델에 맞는 선수를 전 세계에서 발굴하도록 특화되어 있어서, 개인보다 시스템이 팀을 이끄는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
26/27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은 '강팀이 당연히 이긴다'는 상식을 보기 좋게 뒤집었습니다. 20년 넘게 개막전을 봐왔지만, 이 정도로 상위권 팀들이 동시에 흔들린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더 주목하는 것은 결과보다 내용입니다. 각 팀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 — PSR의 영입 제약, 월드컵 여파, 패배 의식, 핵심 선수 공백 — 이 개막전이라는 무대에서 그대로 노출됐습니다.
앞으로 선수들의 컨디션이 올라오고 영입이 마무리되면 순위표는 우리가 익숙한 모양으로 정렬되겠지만, 완전히 같은 그림은 아닐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스템을 갖춘 팀과 개인에 의존하는 팀의 차이가 이번 시즌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 같습니다. 다음 라운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저도 벌써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