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SG가 부다페스트 푸스카스 아레나에서 아스널을 승부차기 4-3으로 꺾고 챔피언스리그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점유율 74%, 유효 슈팅 21개 대 7개. 숫자만 봐도 경기가 어떻게 흘렀는지 짐작이 가는데, 저는 이 경기를 보면서 "이건 창이 방패를 결국 뚫은 게 아니라, 방패가 끝까지 버텼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은 경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창과 방패, 두 팀의 전술 충돌
이번 결승전은 스타일이 정반대인 두 팀이 맞붙은 무대였습니다. PSG는 점유율 기반의 포지셔널 플레이(Positional Play)를 구사했습니다. 포지셔널 플레이란 선수들이 공간을 점령하고 상대 수비 블록에 구멍을 내는 방식으로, 공을 계속 돌리며 상대가 지치도록 만드는 전술입니다. 반면 아스널은 로우 블록(Low Block) 수비를 선택했는데, 이는 수비 라인을 자기 진영 깊숙이 내리고 상대의 공격 루트를 최소화하는 방식입니다.
전반 6분 카이 하베르츠의 선제골이 터지자, 아스널의 전술 의도는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리드를 지키면서 PSG가 최대한 에너지를 낭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전략 자체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경기 후반 PSG의 기대 득점(xG)이 1.77이었던 반면 아스널은 0.44에 불과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아스널이 이 전략으로 얼마나 잘 버텼는지가 더 놀랍습니다. 기대 득점(xG)이란 슈팅 상황의 질을 수치화한 지표로, 득점 가능성이 높은 위치에서의 슈팅일수록 xG 값이 높아집니다.
제가 경기를 보면서 눈에 띄었던 건 PSG의 중반 전술 수정이었습니다. 데지레 두에가 중앙 공격수 역할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아스널 수비 간격을 벌렸고, 우스만 뎀벨레가 측면으로 빠지면서 공간을 창출했습니다. 루이스 엔리케 감독의 조정 능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습니다.
승부차기, 준비된 팀과 준비 안 된 팀의 차이
경기가 연장전까지 가면서 승부차기(Penalty Shootout)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승부차기란 정규 시간과 연장전에도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각 팀에서 선수가 나와 골키퍼와 일대일로 페널티킥을 차는 방식으로, 득점 수가 많은 팀이 최종 승리하는 규정입니다.
제가 연장전이 시작될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스널 입장에서 페널티킥 키커가 충분히 남아있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두 시즌 아스널에서 페널티킥 경험이 있던 선수들의 연장전 잔류 여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부카요 사카: 선발 출전 후 연장 전 교체
- 카이 하베르츠: 선발 출전 후 연장 전 교체
- 마르틴 외데가르드: 선발 출전 후 연장 전 교체
- 레안드로 트로사르: 선발 출전 후 연장 전 교체
- 빅토르 교케레스: 연장전 잔류 (성공)
결국 에베레치 에제와 가브리엘 마갈량이스가 페널티킥을 맡았지만, 에제는 슈팅이 골문을 벗어났고 가브리엘은 크로스바 위로 날려버렸습니다. 아르테타 감독 입장에서는 63번째 경기라는 극한의 일정 속에서 내린 선택이었겠지만, 저는 이 부분에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습니다. 4명의 검증된 키커를 연장전 전에 모두 소진한 것은 결과적으로 너무 큰 리스크였습니다.
반면 아스날 골키퍼 다비드 라야의 행동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누노 멘데스의 킥을 막아낸 후 바로 공을 주워 다음 아스널 키커에게 건네며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세트피스처럼 세부 사항 하나하나가 승패를 가르는 축구에서는 이런 작은 심리전이 큰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강인 없는 결승, 그리고 아쉬운 카메라
저는 이번 결승전에서 개인적으로 이강인 선수를 많이 기다렸습니다. 4강에서 김민재 선수의 뮌헨이 탈락하면서 한국인 맞대결이 무산된 것도 아쉬웠는데, 이강인 선수마저 결승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면서 화면 속에서 그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연장전이 시작되면서 승부차기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저는 킥력이 좋은 이강인 선수의 투입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루이스 엔리케 감독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감독의 전술적 판단을 존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팬 입장에서는 당연히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시상식과 트로피 세레머니 장면에서 이강인 선수에게 카메라가 제대로 비추지 않는 장면이 이어졌습니다. 이 부분은 솔직히 한국 축구팬들에게 실망스러운 장면이었습니다.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순간은 선수에게도 팬에게도 소중한 기억인데, 중계 화면에서 그 모습을 제대로 담지 못한 건 방송 측의 아쉬운 선택이었습니다.
한편, 경기 후 파리에서는 800여 명이 경찰에 체포되는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고 합니다(출처: BBC Sport). 우승의 기쁨을 나누는 것은 당연하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과격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스포츠 문화 전체에 해가 됩니다. PSG의 우승이 빛나는 만큼, 이런 장면은 그 빛을 흐리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루이스 엔리케의 3관왕, 그리고 아스널의 숙제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이번 우승으로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세 차례 들어 올린 감독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카를로 안첼로티(5회), 그리고 펩 과르디올라, 지네딘 지단, 밥 페이즐리와 같은 3회 우승 그룹에 이름을 올린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연속 우승은 단순한 전력 차이만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선수단 관리, 전술 적응력,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의 판단력이 모두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일입니다.
주앙 네베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볼 터치 111회, 패스 성공률 88%, 볼 탈취 6회를 기록한 21살의 미드필더는 이미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특히 그가 보여준 프레스 저항(Press Resistance) 능력은 독보적이었습니다. 프레스 저항이란 상대의 압박 속에서도 공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다음 플레이로 연결하는 능력을 말하며, 현대 미드필더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입니다.
아스널은 이번 시즌 63경기를 치르며 챔피언스리그 유럽 대회 정규 시간 무패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7 실점에 그친 수비 안정성은 리그 우승과 함께 이 팀의 완성도를 증명합니다(출처: UEFA). 그러나 결승전에서의 점유율 26%, xG 0.44라는 수치는 앞으로 아르테타 감독이 풀어야 할 숙제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수비는 완성됐지만, 빅 클럽을 상대로 공격적으로 승부를 걸 수 있는 전술적 용기가 다음 단계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PSG가 2연패를 달성한 지금, 과연 이 팀이 레알 마드리드처럼 챔피언스리그의 새로운 왕조를 열어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루이스 엔리케 감독과 주앙 네베스를 중심으로 한 이 팀은 당분간 유럽 최강의 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아스널도 분명히 다시 도전장을 낼 것입니다. 다음 시즌 두 팀이 다시 맞붙는 날이 온다면, 그 경기는 이번보다 훨씬 뜨거운 무대가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