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와 호날두가 서서히 무대에서 물러나는 걸 지켜보면서, "그 다음은 누구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 답이 홀란드와 음바페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는데, 이 둘이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라는 게 오히려 비교를 더 흥미롭게 만듭니다. 과연 어떤 선수가 진짜 차세대 최고의 공격수일까요? 완전히 다른 두 공격수, 어떤 유형인가 황희찬 선수와 한 팀에서 뛰던 홀란드가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을 때, 솔직히 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세계 최고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통할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 걱정이 무색하게 그는 데뷔 시즌부터 득점왕을 차지하며 완전히 다른 급의 선수임을 증명해 보였습니다.홀란드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클래식 넘버나인'입니다. 넘버나인이란 전통적인 중앙 공격..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메시를 그냥 '타고난 천재'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작은 키에 조용한 성격, 화려한 세레머니도 없는 선수가 왜 이렇게 압도적인지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커리어를 오래 지켜보면서, 그 천재성이 단순한 재능이 아니라 역경과 과학이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걸 하나씩 깨달았습니다. 역경이 만든 플레이어 — 한계가 강점이 된 이유 일반적으로 스포츠 천재라고 하면 타고난 신체 조건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메시는 그 공식을 완전히 뒤집은 선수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의 작은 체구가 분명 한계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메시는 10살 때 성장호르몬 결핍증(GHD) 진단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GHD란 뇌하수체에서 성장호르몬이 충분히 분비되지 않아 신체 발달이 또래보다 현저..
역대 축구 이적료 1위는 2017년 네이마르의 2억 2200만 유로, 우리 돈으로 약 3200억 원입니다.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솔직히 숫자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2000년대 초반 지단의 이적 뉴스를 보며 해외 축구에 빠져든 팬인데, 그때 1000억이 넘는 이적료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그 시절 기준으로 보면 지금의 이적 시장은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숫자로 보는 역대 이적료 순위, 팩트부터 확인하면 지단이 2001년 유벤투스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기록한 7750만 유로는 당시 세계 최고 이적료였습니다. 그때 저는 중학생이었는데, 부모님께 "축구 선수 한 명이 1000억짜리래요"라고 말했다가 믿지 않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 그 금액은 역대 100대 ..
솔직히 처음에 저도 '미드필더가 뭐가 그리 대단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골을 넣는 건 공격수고, 막는 건 수비수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지단, 사비, 이니에스타의 경기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세 선수는 제가 축구를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하나의 언어로 읽기 시작하게 만든 계기였습니다. 전설의 배경: 세 미드필더가 시대를 지배한 이유 일반적으로 위대한 선수라고 하면 득점 수나 트로피 개수로 평가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미드필더만큼은 그런 기준이 잘 맞지 않습니다. 지단, 사비, 이니에스타는 각자 다른 시대, 다른 방식으로 경기장을 지배했고, 그 방식 자체가 축구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지네딘 지단은 클럽 경기 631회, 프랑스 국가대표로 108경기에 출전하며 ..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해는 2008년입니다. 아시아 선수가 유럽 정상에 선 그 장면을 TV 앞에서 봤을 때, 저는 솔직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뭔가가 목 안쪽에 걸렸던 기억이 납니다. 박지성이 챔피언스리그와 월드컵에서 남긴 발자국 박지성의 유럽 여정은 2002 월드컵 직후 히딩크 감독의 손을 잡고 PSV 아인트호벤으로 건너가면서 시작됩니다. 처음엔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고, 인종차별까지 맞닥뜨렸다는 이야기는 당시에도 꽤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다잡은 뒤의 박지성은 달랐습니다. PSV 홈팬들이 자발적으로 응원가를 만들고 "지송빠레"를 외치기 시작했을 때, 제 기억엔 국내 팬들 사이에서도 그 영상이 엄청나게 돌았습니다. 외국 팬들이 한국 선수를 ..
솔직히 저는 어릴 때 11번이 그냥 '왼쪽에 뛰는 선수 번호'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번호 하나가 저의 축구 인생을 관통하는 숫자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7번, 9번, 10번은 왜 그렇게 선수들의 로망이 되었을까요? 그리고 그 번호들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요? 등번호가 생겨난 역사적 배경 등번호가 처음 축구에 도입된 것은 1933년 FA컵(Football Association Cup) 결승전에서였습니다. FA컵이란 잉글랜드 축구 협회가 주관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 컵 대회로, 당시 심판과 관중이 선수들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번호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에버튼 선수들은 1번부터 11번,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은 12번부터 22번을 받았습니다.이 역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최초..